닫기

- (사)한국화재조사학회 로그인 화면입니다. -

게시판

제목 [re] 있을 때 잘하세요
작성자 강형철 등록일시 2007-08-06
첨부파일
세삼스럽게 눈물 나네...잉잉
>아내에게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 새벽편지 가족 -
>



이전글  ▲ 어느 군인의 이야기
다음글  ▼ 홈페이지 회원정보 관련 공지사항(필독)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