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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경제신문_ 권현석 부회장님 멋지십니다.
작성자 김용수 등록일시 200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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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인터뷰]

화재 현장의 `셜록홈즈`…불길 흔적으로 발화점 찾죠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120469931
●화재조사관 권현석 소방경
화염뚫고 사람안고 나오는
선배들 모습에 가슴 뛰었던 기억

분당소방서 권현석 소방경이 화재현장의 사진 자료를 보며 화인(火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유난히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1986년 1월 어느 날.대학 졸업을 앞두고 전북 김제의 집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은 창문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경악했다. 길 건너 정미소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던 것.쌩쌩 부는 겨울 바람을 타고 불길은 330㎡(100평)짜리 정미소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사방으로 불똥이 튀어 정미소 옆집들은 물론 청년의 집까지도 위험한 상황.동네 사람들이 물을 뿌렸지만 역부족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절체절명의 순간 4명의 소방관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은빛 방화복을 입은 그들이 소방 호스를 연결하고 물을 뿌린 시간은 겨우 10분.온 동네를 집어삼킬 듯 치솟던 불길이 금세 잡혔다. 평범한 공무원을 꿈꿨던 청년이 소방관으로 진로를 바꾼 것은 바로 이때였다. 그로부터 23년.그때의 청년은 중년 아저씨가 됐지만 화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의지만은 여전히 청년이다. 경기도 분당소방서에서 화재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권현석 소방경(50)이 바로 그다.

▼첫 화재현장은 두려웠을 것 같은데요.

"처음 배치받은 곳이 성남소방서였어요. 당시에는 교육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첫날부터 주택 화재 현장에 출동했죠.교육이라고는 고작 2시간 정도 이론 강의를 들은 게 다였는데 화재 현장에 가니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화염 속에 갇힌 사람들은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유독가스는 마구 뿜어 나오고건물은 계속 무너지고….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죠.하지만 선배들은 다르더군요. 바짝 얼어 있는 저에게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더니 문을 부수고 지하에 들어가더라고요. 연기와 화염을 뚫고 사람을 안고 나오는 선배들 모습에 가슴이 뛰었죠."

▼불길 속에서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화염을 뚫고 들어갈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본능만 남아 있죠.불길 속에서는 신체의 오감을 다 이용합니다. 신음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이상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는지 등등 세심하게 점검해요. 연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쪼그린 상태에서 앞으로 전진하며 양팔을 벌려 샅샅이 뒤져요. 인간의 본능은 어느 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경험 많은 소방관들은 쉽게 사람을 찾아냅니다. 사람들의 피난 심리를 이용하는 거죠.주로 창문 쪽,화장실,막다른 곳 등 일반적인 피난 동선을 훑으면 대부분의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

▼잊을 수 없는 진화 현장을 꼽는다면.

"소방관은 어느 현장도 잊을 수가 없어요. 제가 23년 동안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현장에서 본 시신만 어림잡아 500구는 될 겁니다. 극적인 화재 현장이란 없어요. 오직 살아야 한다는 본능만 남아 있는 생지옥뿐이죠.극적 스토리나 감동 같은 건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일 뿐입니다. "

▼화재 진압을 하다가 화재조사관으로 보직을 바꾸셨네요.

"현장에서 숱한 시신을 보면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화재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 중에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시신을 태우기 위해 현장에 불을 지르는 일도 가끔 있어요. 화재조사관은 불길이 모든 걸 삼킨 폐허의 현장에서 단서가 될 만한 조각들을 취합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전문가를 말합니다.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 탐정인 셈이죠."

▼화재조사관은 진압대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화재의 대부분은 단서가 소실돼 원형을 복구할 수 없어요. 그러니 쉬운 일은 아니죠.또 화재조사관이라고 화재 현장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진압대와 함께 화재 현장에 들어가요. 발화점을 찾아줘야 불을 원활하게 끌 수 있거든요. 지난 10월 분당 서현역 인근의 7층 건물 치과에서 불이 났어요. 진압요원들과 함께 출동했죠.화재 현장에 들어가 천장을 보니 중심부는 새까맣게 타 있는데 주변부는 덜 타 있었어요. 천장의 전기합선에 의한 화재였던 거죠.그 부분에 집중 진화작업을 해 인명 피해 없이 금방 불을 끌 수 있었죠."

▼화재의 원인을 사후에 밝히는 건 더 어렵지 않나요.

"그래도 그건 피해자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원인 분석을 하고 누구의 잘못인지 명확하게 가려주지 않으면 법정 다툼으로 갈 수도 있거든요. 저희가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면 서로 보상을 하지 않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가고3~4년씩 민사소송을 하죠.화재 현장에는 증거가 명확히 남지 않는 데다 누가 그 현장을 3~4년씩 보전하겠어요.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재판 진행도 어려워 양쪽 다 피해를 보게 되죠."

▼발화 원인을 파악하는 특별한 요령은.

"불이 났다는 건 거기에 반드시 에너지원이 있다는 얘기예요. 화재 원인 추적은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슬슬 불과 얘기를 나눠가며 원인을 추적합니다. 불길이 몰려 있으면 불이 저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죠.가장 많이 탄 부분을 짚어내고 불길의 방향을 보면 원인을 파악할 수 있어요. "

▼감식은 어떻게 하나요.

"화재를 진압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원인 감식을 하죠.화재 신고 당시 정보와 출동 당시 식별되는 연기 색상,현장에서 얻은 신뢰할 만한 정보,화재 건물에 대한 연소의 강약,연소의 방향성과 전기 단락 모양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합니다. 화재 진압 후 시신이 나오면 화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부터 판단해요. 생활 반응 흔적 위주로 보는 건데 예컨대 시체의 입이나 코안에 그을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화재 현장에서 살아 있던 사람인 거죠."

▼위험한 일이라 가족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죠.4남1녀 중 막내 아들인 제가 처음 소방관 시험에 합격하자 말리셨어요. 지금도 전화를 드리거나 뵈면 다친 데 없냐고 걱정부터 하십니다. 서른셋에 결혼을 했는데 처가에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죠.다행히 의용소방대장을 하시던 처외숙부께서 좋게 이야기해 주셔서 결혼하게 됐죠.아내는 지금도 노총각을 구제해 줬다고 큰소리 치면서 항상 몸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가끔 아내가 젊은 나이에 과부 만들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농담할 땐 마음이 짠하기도 하죠.초등학생 아들들도 소방관 할래? 하면 고개를 흔들어요. "

▼미국에서는 소방관이 영웅 대접을 받는데 한국에선 홀대받는 경향이 있죠.최근에는 초과근무수당 미지급분 청구 소송을 소방관들이 내기도 했는데요.

"미국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을 존중하는 사회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소방공무원은 거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죠.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는 소방관들을 사랑해주시는 국민이 많이 늘고 있어요. 하지만 처우는 취약한 것이 현실이죠.대부분 2교대 근무 체계인 데다 수시로 떨어지는 비상소집에 제대로 쉴 수 없는 소방관이 많아요. 초과근무수당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요. 근무 여건이 열악한 만큼 실질적인 3교대제가 하루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의 희망이 있다면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안전이죠.소방관들의 첫 번째 임무는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불을 예방하는 겁니다. 불의의 화재로 고통받는 국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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