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불이 지나간 뒤 남는 것은 새하얀 재뿐이다. 그러나 그 재를 조심스럽게 들춰보면 진실이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화재감식반 이상준 경장(36·사진 왼쪽)과 서울 소방방재본부 화재조사팀 감식반장 안성일 소방교(37)는 친구 사이다. 거의 매일 화재현장에서 만나다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화재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은 소방관이다. 1차 조사 역시 소방관의 임무다. 피해가 크지 않고 원인이 명확한 화재는 일선 소방서의 1차 조사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막대한 보험금이 걸려 있다거나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또 방화와 실화 구분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이경장과 안소방교가 현장으로 나간다.
현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멀리서 보는 것’이다.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눈에 현장 전체를 볼 수 있는 높은 건물을 찾아 올라간다. 보통사람의 눈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만 보이겠지만 두 사람은 ‘불의 흐름’을 읽는다.
목격자 진술을 듣는다. 진술 중 가장 많은 것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지붕에서 불이 솟았다”이다. 그렇다면 불이 시작한 곳은 ‘지붕’이고 원인이 ‘전기사고’일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불은 아래에서 위로 움직인다. 발화지점이 어디든 결국에는 지붕을 뚫고 나간다. 이 때문에 진술만으로는 발화 지점과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
다음으로 초기진화에 참여한 소방관의 이야기를 듣는다. 진화하다 보면 부득이 현장을 훼손하게 된다. 소화액은 걷어내면 되지만 강한 물줄기 때문에 날아간 천장과 벽은 소방관의 진술을 토대로 복원할 수밖에 없다. 불로 인한 훼손인지 진화과정에 일어난 파손인지 명확히 해둬야 한다.
그런 다음 현장으로 들어간다. 카메라는 필수품이다. 현장감식에 투입하는 인원은 경찰관 2명과 소방관 2명이다. 현장에서 구역을 나눠 감식에 들어간다. 보통 3시간 정도 걸린다. 장비는 붓과 현미경 조명기구 정도다. 그리고 경험 많은 눈과 코가 필요하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지언정 거짓말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발화지점을 찾는다. 불은 약하게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맹렬하게 타오른다. 화력에 따라 남기는 흔적이 다르다. 벽의 그을린 자국이라든가 타다 남은 목재와 금속제품의 훼손 정도를 보면 불이 지나간 길을 추적할 수 있다.
발화지점을 찾았으면 방화냐 실화냐를 판단해야 한다. 인화물질이 없는 소파나 테이블 위 가구 등에서 불이 시작했다면 방화일 가능성이 크다. 부엌이나 발열기구 부근에서 불이 붙었다면 방화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다른 단서는 유리창이다. 불이 나면 유리창은 어떻게든 깨진다. 열 때문에 깨지기도 하고 진화를 위해 소방관이 깨기도 한다. 깨진 유리창을 분석하면 파손된 시점을 알 수 있다. 화재 전에 유리창이 미리 깨졌다면 일단 의심해본다.
발화지점이 여러 곳이라면 십중팔구 방화다. 실화라면 한곳에서 발화해야 정상이다. 방화범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불을 놓은 것이다. 이런 수사과정을 거쳐 현장에서 채집한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진다. 최종분석이 끝난 뒤에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다.
이경장은 1992년 6월 경찰에 입문했다. 98년 과학수사반으로 발령을 받았다. 2000년 서울경찰청으로 옮긴 뒤 전문 화재감식요원이 됐다. 2001년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화재조사전문화교육 2기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2월 명지전문대 전기과를 졸업하고 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이경장은 “아무리 현장경험이 풍부해도 전문지식이 부족하니 답답했다”며 “불을 다루려면 전기·안전·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소방교는 91년 소방위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다. 일선 소방서를 거쳐 화재조사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경민대학교에서 소방안전시스템을 공부하고 있다. 안소방교 역시 “답답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며 “죽기살기로 공부해 장학금을 타고 있으니 다행”이라며 웃었다.
많은 화재사건이 ‘원인불상’으로 처리된다. 그만큼 화재조사는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이경장과 안소방교는 “방화사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낸다”며 “완전범죄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글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사진 박재찬기자 jcpark@kyunghyang.com〉